2009년 11월 08일
장안준하(張安俊河) 선생께서는 자원해서 입대하신 겁니다.
누가 강제로 학병에 끌려갔다 그래요? 어려운 집안사정 면해보려고 직접 귀국해서 여고생과 결혼한 뒤 출정하셨어요. 비록 혈서 입대는 아니었지만, 자원입대는 분명하죠. 평전도 안읽어보셨습니까? 자신은 피치못할 사정이었다고 하지만, 그건 그 양반 얘기일 뿐.. 평전을 보면 부모의 신변이 걱정되서 자원 입대했다고 나오는데, 그런 양반이 탈영을 왜 해. ㅋㅋㅋㅋ
1944년 일제의 패망이 코 앞에 다가오자 장준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탈영합니다. 왜? 개죽음 당하기 싫으니까. 탈영한 사람이 귀국하겠어요? 아니면 전쟁터에서 숨어살겠어요? 목숨을 부지하려면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지요. 그래서 간 곳이 광복군이에요. 거기서 총이나 몇번 쏴봤겠어요?
그리고 그양반 처음부터 박정희 안티는 아니었어요.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한 직후 그는 사상계 권두언에다 이런 글을 썼어요.
思想界 1961년 6월 卷頭言 절정에 달한 국정의 문란, 고질화한 부패, 마비 상태에 빠진 사회적 기강 등 누란의 위기에서 민족적 활로를 타개하기 위하여 최후 수단으로 일어난 것이 다름 아닌 5.16군사혁명이다. 4.19혁명이 입헌정치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면, 5.16혁명은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와 공산주의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으려는 민족주의적 군사혁명이다. |
비록 거사성공 후 군인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는 조건으로 5.16을 지지한 거지만, 그거야 말하기 나름이고..어쨌든, 4.19이후의 무질서와 혼란, 공산도배들의 침략을 우려하며 5.16 군사혁명(?)을 칭송한 건 사실. 이 놈의 나라는 인물이 김구 아니면 장준하 밖에는 없나?
덧. 자료출처는 我幸行님의 블로그
# by | 2009/11/08 01:56 | 인.물.평.론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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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도 아니고, 야당 중진도 아닌 무명의 인물을 꺼내서 박정희의 라이벌로 포장, 미화하다니... 그래서 반론도 함께...장안준하(張安俊河) 선생께서는 자원해서 입대하신 겁니다.思想界 1961년 6월 卷頭言 [5.16혁명과 민족의 진로]1970년대 부터 박정희의 라이벌로 떠오른 사람은 김 ... more
만약 갑종간부후보시험에 합격했다면, 1개월 후 바로 오장으로 진급하고, 3개월 후에는 군조가 된다고 합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제가 박정희의 하사관 자격설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1938년이 비록 전시이기는 하지만 훈도에게 바로 현역의 자격이 주어졌는지는 자료가 부족하여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 연결고리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가설 정립이 미흡하다고 생각하여 내렸습니다
日本陸軍士官學校 또는 陸軍士官學校(1984년 판), 그 책에서 복사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9 페이지에 소화 8년(1933년) 개정된 일본 제국육군제학교 생도채용규칙(帝國陸軍諸學校生徒採用規則) 入學適齡 第1條 1項에는 현역 하사관이면 26세까지 예과사관학교 지원 자격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으로 <훈도=판임관(하사관)=26세 지원 자격>을 주장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第1條 2項의 간부후보생은 25세까지 입학자격이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지원 자격 논의에 근접한 적용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교련과목을 이수하고 교련검정시험에 합격한 자는 간부후보생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입영 후 4개월이 지나면 간부후보생 자격시험을 치러, 시험에 합격한 후 간부후보생으로 채용된다면 박정희도 틀림없이 이 과정을 이수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사관이 아니라 간부후보생으로서 (혈서가 필요 없이) 25세까지 예과사관학교인 군관학교 지원 자격이 주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교련, 입영, 갑을종 간부후보생시험에 관련해서도 추가 설명 부탁 드립니다.
왜군과 죽어라고 싸우는 중화민국 국군유격대와 그들을 공격하는 공비들을 보았기에, 5.16후 저런 권두언이 나왔다고 봅니다.
...만주 무관 학교를 나와 일본제국주의 관동군 중위가 된 사람은 항일운동을 하는 중국군과 조선 독립군을 진압하는 자가 된다....
아니나다를까 "조선독립군"이라는 단어를 슬쩍 끼워넣는 센스는 여전하네요.
마오쩌뚱은 팔로군 간부들에게 '중일전쟁은 본당의 발전에 좋은 기회이고, 우리들이 결정한 정책은 70%를 자기발전에, 20%를 타협에, 10%를 대일작전에 두는 것이다'라고 했다지요.
이걸 두고 독립운동 했다고 생각하면, 그건 참 미친 짓이죠.
그런데 무슨 강제징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