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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考...박정희 혈서 증거자료라는 것을 보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주신문의 "血書, 軍官志願"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인용, 박정희의 혈서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떠들고 있다. 과장과 왜곡이 난무한 일제시대 어용신문들의 기사에 대해 이렇듯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면서 작두날을 타는 무당처럼 신명난 살풀이를 하고 있다. 그런 기준이라면 학도병 궐기를 촉구한 기사가 무려 3번이나 나간 여운형은 왜 친일인명사전에서 뺐는지 모를 일이다.

일단 이 신문기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29일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교사)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 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목숨 다 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라는 부분을 보자.

여기서 29일이란 1939년 3월 29일을 뜻한다. 하지만 제1기 신경군관학교 예과생도의 합격자 발표는 그보다 앞서 1939년 2월 24일날 이미 만주국『政府公報』1459號를 통해 종료가 된 상태다. 그런데 합격자 발표일보다 한달이나 늦게 3월 29일날 박정희의 지원서가 송부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언제 이 혈서편지를 보냈단 말인가.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보면 유증선이 1938년 5월에 혈서를 썼다고 한다. 만주까지 우편이 송달되는데는 1주일이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모집공고는 1938년 5월 이전에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1기 채용시험은 1938년 10월에 있었고 모집공고는 그 전에 있었을 것으로 추론한다면, 설령 유증선이 날짜를 착각했다 하더라도 이 신문기사의 신뢰성은 심히 의심이 간다.
또한 몇가지 문제가 더 보이고 있는데, 이 신문을 보면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신경군관학교 제1기 모집시에는 만계(滿系)만 모집했으며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이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조선계는 만주계에 속해 일본계 모집요강과는 해당사항이 없으며,  일본계가 신경군관학교에 최초에 입학한 것은 1940년 1월이다. (滿洲國軍刊行委員會, 滿洲國軍, 蘭星會, 1970, 619쪽). 그런 고로 이 신문기사는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덧, 일단 반론 자료가 나왔으므로 이전에 올렸던 "박정희 혈서설 떡밥은 여전히 유효한가"는 근거를 좀더 보강하여 재포스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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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無名氏 | 2009/11/06 00:59 | 인.물.평.론 | 트랙백(3) | 핑백(1) | 덧글(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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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LifePen.Net at 2009/11/06 09:16

제목 : 박정희는 혈서를 썼다 2, 또는 무명씨의 자폭에 대해
박정희考...박정희 혈서 증거자료라는 것을 보고자. 드디어 사료 좋아하는 무명씨가 자폭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무명씨의 논리에 따르면 만주신문이 박정희가 쓰지도 않은 혈서를 썼다고 조작했다는 것인데, 만주신문이 박정희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고 없던 일을 조작까지 하겠는가. 그거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일제에 충성하겠다는 리얼 스토리는 차고도 넘쳤는데, 뭐하러 허구를 조작해내겠는가. 전후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무명씨가 고민하는 문제의 정답은......more

Tracked from 나의 인적없는 갈대밭 at 2009/11/0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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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일본군" 출신이라고 모는 것은 옳은가? 어제 나온 뉴스를 오늘 보았다. 박정희가 일본 육사를 졸업하면서 예비역 육군 소위의 자격을 받았고, 그 상태로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따져 보면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사실은 아닌 것 같다. 박정희는 일본군 예비역 소위로서 한 일이 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간 목적은 연령 제한 문제로 일본 육사에 갈......more

Tracked from 미즈 * Graf Mizu at 2009/11/08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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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저 쪽에서 사실인양 팩트입네~ 하고 꺼내온 떡밥이 다 쉰 떡밥이었다는게 생산성 없다고 느꼈는데 - http://allthekind.egloos.com/ 무명님 블로그 보고 이것도 뻥이었구나 - 라는 생각에 피식 웃고 마네요 ㅋㅋㅋㅋ 이글루스라 스크랩 안되어서 링크로 대체 합니다. 앞뒤 정도는 맞추고 뻥을 치셨어야죠 ^ㅁ^...more

Linked at 친일 빠돌이의 초 마이너 블로.. at 2009/11/08 00:04

... . 그러나 무명씨의 여러 반박(http://allthekind.egloos.com/2471161, http://allthekind.egloos.com/2470622)을 보면 민족문제연구소가 제기한 기사가 진정성이 있는, 가치있는 사료인지 의심이 간다. 더욱이 앞서 제기한 문제 외에도, 필자인 무명 ... more

Commented by 별과자 at 2009/11/06 01:38
신문기자가 미래를 내다봤나보네요. 당시 한낱 경북 문경 소학교 교사에 지나지 않던 사람이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을 해먹을지는 어떻게 알고 저렇게 콕 찝어서 신문기사를 내보냈는지.ㅎㅎ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1/06 02:28
시간을 달리는 도죠 히데키라도 있었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시 일개 소햑교 교사로 평범하게 지내는 사람을 갑자기 '굳이' 끌어다가 '조작'할리가 없지요. 'ㅅ'
Commented by 백범 at 2009/11/06 16:10
아이고, 태평양전쟁중에 죽은 나구모 주이치가 박정희 은사라고 개소리를 하는뎁쇼 뭐...
Commented by 無名氏 at 2009/11/06 02:48
들꽃향기/ 일제시대 기관지를 보시면 무명용사의 미담 같은 것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개 촌부의 혈서는 모든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미담으로 언제나 각색되어 융통되던 시절이었습니다.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1/06 03:06
시대 정황 자체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하고 많은 사람중에 왜 박정희인가?라는 의문입니다.

당시 일제가 '왕도낙토에 협력하는 한국인의 미담'을 선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조작도 불사할 상황에 있었다고 가정했을 때, 신경군관학교에 지원한(혹은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한) 한국인이 박정희 뿐이었거나 그 수가 많지 않았더라면 박정희에 대해서 그러한 '조작'이 가해질 가능성은 있겠지요.

즉 제가 바라는 해답은 당시의 '정황설명'이 아니라 왜 박정희를 지목해서 '그가 혈서를 보냈다.'라고 '만주신문'에서 말씀하신 '조작' 혹은 '오류'를 만들어냈을까 하는...박정희가 조작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해명은 다음 포스팅에서 충분히 해주시리라 기대합니다.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1/06 11:25
들꽃향기//신경군관학교 1기 합격생 중 조선인은 13명입니다. 하지만 거의 전원이 만주 출신으로, 11명이 용정의 광명중학교 졸업생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인 지원자의 존재 자체는 뉴스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주 거주자도 아닌 조선, 그것도 함경도나 평안도가 아닌 경상도에서 지원자가 왔다는 사실은 분명히 뉴스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Commented by 몽몽이 at 2009/11/06 09:04
신문 따위를 어떻게 증거로 볼 수 있냐던 어떤 사학과 출신 블로거가 생각나지 말입니다.
Commented by 몽몽이 at 2009/11/06 10:25
라이프펜인지 하는 분은 혈서를 펜으로 쓰나 봅니다. 낄낄낄
Commented by 빛나리 at 2009/11/06 10:37
획기적이죠, 혈서 2장설이라...
Commented by 백범 at 2009/11/06 18:42
장군님축지법 쓰신다에 이어 장군님 연필로 혈서를 쓰신다 가 유행할 차례군요. ㅋㅋㅋ
Commented at 2009/11/06 10:3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無名氏 at 2009/11/06 11:16
라이프펜인지 룸펜좌빨 한마리가 트랙백을 날린 것을 잠시 읽어봤는데, 얘는 떡밥이나 던져주면 우걱우걱 씹어먹을 줄만 알뿐이지.. 논증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친구랍니다.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은 1939년 9월에나 있었는데, 발표되지도 않은 모집요강을 박정희가 "받들어 읽었다"는 자체가 난센스고, 혈서지원을 하려면 모집기간에 해야지 모집기간이 뭐야. 합격자 발표 다 끝난 시점에 혈서지원을 했다는게 상식적으로 말이나 되냐고.

2번에 걸쳐 편지를 썼다는데 두번다 혈서를 썼다는 추론은 뭘 근거로 하는 것인지? 이 친구들은 그저 건수하나 잡고 물어뜯고 있을 뿐, 그것을 추적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는 안되는 애들임.

얘들아. 학도병 궐기를 촉구한 연설을 3번이나 내보낸 여운형 훈장이나 박탈하자고 해라. 여운형 자료가 발굴될 그때는 아가리 닥치고 있었지들?
Commented by 백범 at 2009/11/06 16:08
그건 다들 당국에 의한 날조라고 변명하기 바빴지 않습디까? ㅋㅋㅋㅋ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9/11/06 23:14
1.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여운형은 훈장을 박탈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2. 8일에 출간될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은 분명 없을 것입니다.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1/06 11:19
궁금한 것이 있어 트랙백으로 몇 가지 질문을 남깁니다. 읽어보시고 답변이 가능하다면 몇 줄 남겨주셨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無名氏 at 2009/11/06 13:17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나야스님의 트랙백하신 내용은 일람하였습니다만, 퇴근 후에 다시한번 정독하면서 답변이 될만한 내용이 있는지 확인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갈치친구날치 at 2009/11/06 13:53
11월 8일에 박정희가 친일사전에 등재된 근거가 전부 공개되니 기다리신다음에 포스트 해도 괜찮을거라 생각됩니다. 장장 A4용지 4장짜리라더군요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1/06 15:43
만주신문의 혈서설 기사를 사실(fact)로 인정하기에는 미심쩍음을 넘어 조작의 냄새가 짙습니다. 기사라는 사실이 역사의 과핵(core)이 되기에는 해석이라는 과육(pulp)에서 너무 구린내가 나기 때문입니다. 첫째, 디지털 자료도 아닌 종이 자료인 만주신문이 박정희 혈서설이 제기된 몇십년 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느닷없이 등장한 점입니다. 둘째, 민족문제연구소는 신문 사본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그 신문이 현재 어디에 어떤 형태로 보관되어 있는지 밝혀야 합니다. 셋째, 1939년 3월 31일자 달랑 한 장만 사본으로 보여줄 것이 아니라 다른 일자의 신문과 같이 철해진 상태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사료 조작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무명님의 신문 기사 일자가 합격자 발표 이후라는 문제 제기는 조작의 단서로 아주 중요합니다. 9월에 발표되는, 그래서 5월에는 있지도 않은 모집요강을 5월에 받들어 읽고 혈서를 썼다는 식으로 중요한 일자를 착각했다는 점에서 이미 유증선의 증언의 신뢰성은 없어졌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자의 기사에서는 두번째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1937년 4월 10일 문경공립심상소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자 마자 1차 지원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만, 박정희 전기의 어디에서도 그런 점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Commented by 백범 at 2009/11/06 16:07
포털보면 사이비 박빠들이 많은듯...

박빠랍시고 이럴때 박정희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석달전부터 각 게시판을 세종시로 도배하는것 보면... 그놈들은 사이비들이 맞는듯...
Commented by 붕어 at 2009/11/06 18:54
역사상 거인의 바지끝이라도 잡아 먹고 살겠단 사람들 언제나 있어왔지요.
더구나 거인의 '누더기 팬티'나 찾아 해매이는 인생들이 있단 점에서 그닥
모라하고픈 마음도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왜 사람들은 거인만 보고 그가 간 길을 보고 배울 생각들이 없을까요?
Commented by 백범 at 2009/11/06 18:56
그런것을 아는 자들이라면, 나라꼴을 구한말 꼴로 만들어 놨겠습니까? ㅋㅋㅋㅋㅋ
Commented by 백범 at 2009/11/06 18:55
박정희 혈서설에 국민들 관심이 없는게, 알바들 때문이다??? 이런 글도 대문에 오르는군요. ㅋ

http://savenature.egloos.com/2466445
Commented by 소하 at 2009/11/06 19:13
"考"라는 말이 무색하네요. 그냥 그렇게 믿고 싶다는 개인적 신념으로 보이는데요? 개인적 감정을 이성적인 것처럼 보이고는 싶은데 그것이 잘 안되시나봐요...
Commented by 갈천 at 2009/11/06 20:05
음. 포스트된 자료를 보면 강덕6년 1939년 2월 24일자 채용공고가 바로 합격자 공고라는 말씀이군요.
그러나 신경 2기의 모집요강이 1기 합격자 발표 직후에 발표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 재네들이 제시한 자료가 뻥이라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확 뒤엎어야 할...

그런데 조갑제씨의 글에서 유증선이 증언한 혈서가 허구라면 유증선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도 궁금하군요. 그럴만한 특별한 동기가 없을 것 같은데.

사실 저는 혈서를 썼다해도 별로 크게 문제 삼을 건 없다고 보는 편이고 그 때 당시에는 그럴 가능성도 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창씨개명을 2중으로 해서 오카모도 미노루라는 이름을 썼다면 약간 더티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싶군요.
도대체 일본육해군총합사전 발행측이 어째서 다카키 마사오를 안쓰고 엉뚱한 이름을 넣었는지...
대구사범학교 일본인선생 이름을 오인해서 넣었으리라 것은 좀 비약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혹시 신경군관학교 관련자료 가운데 진짜 있었는지 동경대학출판회라는 곳에 그 출처를 문의해 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1/06 21:01
강덕6년 1939년 2월 24일자 채용공고가 바로 신경 2기의 합격자 공고입니다. 따라서 신경 2기의 모집요강이 1기 합격자 발표 직후에 다시 공고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라이프 펜이라는 사람은 심지어 강덕 5년(1938년) 5월에 유증선이 혈서를 썼을 때가 만계 지원생을 선발하는 정시모집이고, 두번째 혈서를 쓴 강덕 6년(1939) 2월이 일계 군관을 별도로 선발하는 수시모집이라는 어이없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제게 근거자료가 있습니다만, 라이프 펜이 어떤 소리를 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조갑제의 글에서 유증선이 왜 박정희가 혈서를 썼다는 거짓말을 했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그럴만한 특별한 동기가 없을 것 같은데, 다만 그때만해도 혈서를 썼다는 것이 사나이다운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일종의 낭만적인 시대이기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할 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혈서를 쓴 것이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고, 유증선이라는 과거의 동료가 박정희의 결단력을 자랑하려고 과장한 것에 대해 박정희가 개의치 않은 것이 오늘날 덧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박정희가 오카모도 미노루라는 이중 창씨개명을 썼다는 악의적인 조작은 친미와 친일과 친북을 오가던 문명자라는 재미기자가 '朴正熙と金大中'이라는 일본어 책에서 기술한 내용을 동경대학출판회의 편집자 진욱언(秦郁彦)이 일본육해군총합사전에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대구사범 일본인 선생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의 이름을 오인해서 넣은 것은 비약이 아니라 이미 논란의 끝난 사실입니다.
Commented by 악어의눈물 at 2009/11/06 22:00
Mediocris 님
1939년 2월 24일자 채용공고는 신경 2기의 합격자 공고가 아니고 1기 합격자 공고가 아닐까요?
2월말에 발표하고 4월달에 만계 1기생이 입학한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2기생인 박정희는 39년 10월에 시험을 치르고 1940년3월에 훈도를 그만두고 40년 4월에 입학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1/07 08:38
악어의 눈물님의 의견이 맞습니다. 라이프펜의 정시모집과 수시모집이라는, 즉 같은 기의 생도를 만계 일계 구분하여 두번 뽑았다는 개그를 반박하려면 "강덕6년 1939년 2월 24일자 채용공고가 바로 신경 1기의 합격자 공고입니다. 따라서 신경 1기의 모집요강이 1기 합격자 발표 직후에 다시 공고되는 일은 없었습니다."로 고치는 것이 맞습니다. 열을 좀 받아서 실수를 했군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악어의눈물 at 2009/11/06 20:56
갈천님
1939년 2월24일의 채용공고는 합격자 공고가 맞습니다 , 시험은 1938년 10월에 쳤으니까요 모집공고 날짜는 그보다 앞서지 않을까요,

1945년 3월 자료인 육군군인 군속계에 박정희이름이 다까키 마사오로 기록되어 있고, 발행 연도는 나와있지 않지만 陸軍士官學校 名簿編纂會에서 발간한 '陸軍士官學校名簿 五十期以降 非賣品’의 일본육사 57기 졸업생 1,268명 중에는 박정희(다까기 마사오 高木正雄)도 등재되어 있다는게 확인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1992년에 발행된 일본육해군 총합사전에는 오카모도 미노루라고 기재되어 있다는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Commented at 2009/11/06 21: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1/06 21:35
라이프 펜이 정시모집이니 수시모집이니 하는 개그를 하기에 문제를 제기했더니 만계와 일계를 따로 뽑았다는 것은 무명씨가 말했다며 책임을 무명씨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명씨는 <"그러나 신경군관학교 제1기 모집시에는 만계(滿系)만 모집했으며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이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조선계는 만주계에 속해 일본계 모집요강과는 해당사항이 없으며, 일본계가 신경군관학교에 최초에 입학한 것은 1940년 1월이다. (滿洲國軍刊行委員會, 滿洲國軍, 蘭星會, 1970, 619쪽). 그런 고로 이 신문기사는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무명씨가 "1939년 응시에서 부터 일계 군관을 따로 뽑았다."라고 했다는 것입니까?>라는 댓글을 달려고 했더니 무명씨만 상대하고 댓글은 물론 트랙백까지 차단하겠답니다.

살다보니 별 희한한 인간도 사는구나 싶었습니다. 논리가 불리하면 차단하는 것이 이글루스 블로그의 생리입니까? 무명씨가 말한 "만계(滿系)만 모집했으며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이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를 "1939년 응시에서 부터 일계 군관을 따로 뽑았다."라고 변조하는 것은 명백하고도 악의적인 왜곡입니다. 라이프 펜은 일본육사와 군관학교의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無名氏 at 2009/11/07 00:19
애초에 이런 논의를 할 정도의 수준이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트랙백을 걸어놓았는데 별로 관심이 없군요. 본문은 물론 읽지도 않았습니다.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1/07 11:45
라이프펜은 후건긍정 또는 인과 착오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자 기사의 박정희가 혈서가 동봉된 두번째 편지를 보냈다는 것을 유증선의 1938년 5월의 혈서설에 맞추려다 저지르는 자가당착으로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 것입니다. 어떻게 편지를 보냈다는 결과가 두번이라고 신경군관학교 선발도 두번했다고 우기는지 그 특이한 사고구조가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나저나 만주일보 1939년 3월 31일의 기사는 사실로 수용하기에는 너무도 헛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작의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진위의 문제를 떠나 박정희가 혈서를 쓴 사실만으로 친일로 비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23세 청년의 실존적 행위인 현실도피적 군관학교 지원용 혈서를 친일로 비난하려면 1939년에 이미 친일이라는 인식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혈서행위는 흔히 있는 해프닝이었고, 망국에 책임이 있는 지도층들은 일반 민중들의 이런 생존행위를 친일이라고 비난할 만큼 뻔뻔스럽지 못했습니다. 파급효과가 엄청난 여운형의 친일행위를 외면하면서 그 당시에는 별로 이름도 없던 청년의 생존 행위를 오늘에 와서야 친일로 매도하려는 것은 '역사는 진실이 아니라 판단'이라는 말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악어의눈물 at 2009/11/07 00:14
나야스/ LifePen.Net // 두사람이 거짓말을 하길래 반박 할려고 하니 저를 차단시켜 글을 못쓰게 하네요 야비해라

勅令 第50號 陸軍軍官學校令」, 만주국政府公報 1470에 의해 1939년 3월에 개교했다근 자료가 있지만.
나야스/ LifePen.Net 당신네들은 무슨 근거로 1938년에 개교 했다고 구라를 치나요
Commented by 나야스 at 2009/11/07 08:23
전 아무도 차단한 적 없습니다. 괜히 흑색선전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개교"와 "설립"은 분명히 별개의 개념입니다. 학생들을 맞아 수업을 시작한 건 분명히 1939년 3월이겠지요. 그런데 학교를 짓자면 부지 마련이나 건물 준비, 교수진 임용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 과정들이 전부 1939년 3월에 시행되었다는 겁니까?
Commented by 악어의눈물 at 2009/11/07 12:52
나야스/ 님이 차단 시켰다고 한게 아닙니다 님이 차단 시켰다는 글로 보였다면 미안합니다
LifePen.Net의 이글루에서 나야스, LifePen.Net 근거없는 이야기를 하길래 리플로 말하는 도중
LifePen.이 야비하게도 저를 차단 시켰다는 말입니다

님의 글 (신경군관학교 개설은 1938년 4월이고, 이미 1937년 말부터 학생모집을 위한 선전활동은 시
작되고 있었습니다.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한 정일권 만주군 소위(당시 계급)가 모교인 용정 광명중학
교에서 졸업예정자인 후배 학생들을 앞에 놓고 진학지도를 하면서 만주군 지원을 강력하게 권유했다
는 기록이 장창국 장군의 책에 )

저 글에서 틀린것은 1938년 4월은 신경군관학교 개설 법령도 아직 없었때고요 , 1937년부터 신경군관
학교 학생모집 선전활동을 했다는 근거를 보여주세요 설마 정일권이가 후배들에게 만주군 지원 권유
한게 신경군관학교 지원권유로 둔갑합니까 ?

자료와 근거도 없는 엉터리 주장을 하면 안되죠 님과 LifePen의 엉터리 주장에 저는 근거를 제시
할려고 했지만 저를 차단시켜 허위사실 유포에 광분하는 LifePen.의 파렴치하고 뻔뻔스런 작태가
한심할뿐이고요 그런 인간이 친일파 따진다는게 웃기는 일이죠
Commented by 無名氏 at 2009/11/07 12:58
만주국 공보에 따르면 1938년 4월에 봉천의 중앙육군훈련처에서 간부후보생모집 공고를 냈을 때입니다. 나야스님은 아마 이걸 신경만주군관학교 모집건으로 혼동하신듯 합니다.
Commented by 역사짱 at 2009/11/07 15:25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1938년의 혈서설'은 아무래도 실체가 없는거 같군요. 양측의 말씀들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1938년에는 조선인인 박정희가 지원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네요.

그렇지만 저 경우는 많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분명히 만주일보에 박정희가 혈서를 써가면서 지원했다는 내용이 있고, 구체적인 정황도 나와있고 말이지요. 당시에 우리가 산것도 아니고, 정황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은 좀 그릇되었다고 봅니다만.

그리고 무명님. 님의 의견 대로라면 저 만주일보는 조작되었다는 것입니까? 그렇지만 저 자료는 딴것도 아니고 재판정에 제시된 <증거자료> 인데 말입니다! 재판관은 저걸 수용했다고 하는데, 그럼 재판관이 조작된 자료를 그대로 수용하였다는 말씀입니까? 저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군요. 단순히 날짜문제만으로 조작되었다고 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고 말입니다.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1/07 19:40
역사짱님, 재판정에 제시된 <증거자료> 이고 재판관이 수용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답글 부탁드립니다. 혹시 박지만씨의 '친일인명사전 등재 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한 재판 결과를 의미하신다면 혈서 기사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임을 알려드립니다. 가처분이 기각되었다는 의미는 혈서 기사를 증거로 수용해서 박정희를 친일파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친일인명사전 자체가 공공에게 알리기 위한 자료 정도라는 의미에서 등재금지의 가처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Commented by 역사짱 at 2009/11/08 14:20
일단 재판관이 그 증거자료를 수용한 것은 사실 아닌지요...?
Commented by Mediocris at 2009/11/07 17:59
나야스님, 장창국의 <육사졸업생> 20 페이지에는 만군 소위 정일권이 1937년 말에 용정의 광명중학교에서 후배들에게 이듬해(1938년) 4월에 설립될 신경군관학교 입학을 권유했다는 대목이 있긴 합니다. 님은 이것을 근거로 1938년 4월에 신경군관학교가 설립되었고, 당연히 그 전부터 준비가 진행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고집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육사졸업생>의 18 페이지에는 “만주군관학교는 1939년 장춘(신경)에 세워진 4년제 사관학교다.”라고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신빙성이 있을까요?

박정희 친일 추적에 진력했던 오마이뉴스 정운현 기자의 책 <실록 군인 박정희>의 88페이지 각주에도 분명히 “신경군관학교는 봉천군관학교의 후신으로 1939년 수도인 신경에 세워진 정식 4년제 사관학교였다.”라고 기술되었습니다. 1939년 3월 10일 육군군관학교령이 재가, 공포되고 4월에 신경군관학교가 설립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정일권이 1937년에 광명중학교에 가서 후배들을 권유했다는 것은 장창국의 착오입니다. 이제 그만 희망사항에 불과한 1938년 설립설을 포기하십시오.
Commented by 갈천 at 2009/11/07 20:24
Mediocris /

게시된 채용공고문은 1939년 2월24일자로 만주군관학교 설립일이라는 39년3월의 이전 아닙니까? 그렇다면 설립 이전에(예를들어 전년도 가을?) 모집공고가 나간것이 분명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님의 싸이트에서 오카모도 미노루라는 이름의 출처가 1979년 김형욱회고록(김경재대필)에 나오고 그것이 나오게 된 배경은 중앙정보부 제3국장 김영민의 첩보라고 하셨는데 님의 설명도 석연치 않기는 매일반 입니다.

공식자료에 다카키 마사오가 있는데 김영민이란 자가 왜,어디서 오카모도 미노루라는 이름을 가져왔는지 또 그것이 실수인지 의도적인 것인지에 대한 타당한 설명이 없으면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 저의 상식으로는 일본사람들은 단지 누구의 회고록만을 차용하여 전문적인 인물사전에 적용하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의 세밀함, 철저함을 생각할 때 공식적인 자료를 확인도 안한다거나 그 공식적 자료를 배제하고 회고록 같은 자료만을 적용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선정적인 시사잡지라면 모를까 전문적인 사전에는...
Commented by 악어의눈물 at 2009/11/08 00:06
박정희가 다까끼 마사오란 이름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1945년 3월의 임시육군군인 기록에
정확하게 나옵니다, 그러면 현역 군인인 다까끼 마사오가 1945년 3월 이후에 이름을
바꾸었다는것은 상식적으로 보아도 전혀 말이 안되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오카모도 미노루가 박정희 이름으로 기록으로 나오는것은 1992년 발행된 일본
육해군종합총사전에는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인터넷에 떠도는 오카모도 미노루는
2판인 2005년도의 사전에 보인다고 합니다 , 하지만 해방전 기록 어디에도 박정희가
오카모도 미노루 라고 나오는 자료가 없는것으로 보아서는 사전이 잘못되었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요

종합사전을 발행한 동경대학 출반부에 자료출처를 물어 보는게 제일 정확한 답을 얻을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어 잘하시는분이 메일로 한번 질문해보시면 답을 얻을수 있겠지요
Commented by 악어의눈물 at 2009/11/08 00:06
육해군 총합사전은 우리 국회도서관에는 발행년도가 1992년으로 나오지만 틀린것
같습니다 일본 동경대학 출판부에는 1991년 10월에 발매 되었다고 나옵니다
가격은 더럽게 비싸네요 33,600엔 이나 하네요

국회도서관 http://naver.nanet.go.kr:8080/dl/SimpleView.php
일본초판 http://www.utp.or.jp/bd/978-4-13-036060-9.html
일본2판 http://www.utp.or.jp/bd/4-13-030135-7.html

편저인 秦 郁彦 은 1932년 12월8일 생 이면 올해 78세로 나이가 많으시니 더 늦기전에
사전의 자료출처를 알아보면 좋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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