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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考...평범한 너무도 평범한 총기규제론자③

 
이 자칭 "평범한 노동자" 양반께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편의시설만큼은 까다롭게 요구하기로 유명하다. 

미국에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노빠 친목회쯤에 속하는 MoveOn.org라는 단체가 있다. 본문에는 좌파단체로 기술되어 있으나 좌파단체로 보기는 좀 그렇고 진보적 시민단체? 라고 하기엔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이 단체가 2004년도 미국대선 시즌을 맞아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30초짜리 안티부시 광고 컨테스트 행사라는 걸 개최했다고 한다.

이때 무어는 마가렛 조, 잭 블랙 등 유명인사들과 함께 이 행사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일이 있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도중에 무어측 관계자가 다가와서 "무어씨는 수입 water backstage를 원해요." 라고 했다. 행사요원들은 무대배경에 워터쇼를 해달라는 뜻으로 알고 "폴란드 날씨가 아직은 춥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무어측 관계자는 이게 뭥미하는 표정을 지으며 답답하다는 듯이 "무어씨는 에비앙(Evian), 그것도 Water Backstage가 아니면 안마신다구요"라고 방점을 찍어가며 말했다.

Evian Water Backstage가 VIP용 럭셔리 생수 브랜드라는 것을 몰라 1시간 동안 이 문장 해석에 매달린 걸 생각하면 1.5ℓ짜리 제주 삼다수 병으로 이 생키의 대가리를 갈겨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무어는 그의 도서순회전(book tour)을 다닐때마다 1등석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일반 상업항공사 비행기는 마다한다고 한다. 그래서 해외여행시에는 주로 전용기만 타고 다니는데, SUV로 구성된 대규모 차량단과 보디가드들을 대동한다. 이 보디가드들은 무어가 불시의 위협을 당했을 경우 대응하도록 구성된 팀이다.

무어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을 편집증적인 겁쟁이로 매도하면서, 정작 자신의 도서 사인회 행사에서는 사람들이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줄을 서야지만 보디가드들이 만나게 해준다.

고교 총기사건을 다룬 "Bowling for Columbine"이라는 영화에서 무어는 미국인들이 총을 사들이는 것을 불합리한 공포와 환경때문인데.. 이게 다 보수주의자들이 조장한 편집증적인 공포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자신의 보디가드들 중에는 최근 등록되지 않은 총기를 가지고 다니다가 뉴욕에서 체포되기 사람도 있다.

무어는 자칭 "대중경제론자(economic populist)"라 떠벌이고 다닌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대중"이란 돈을 짜내기 위한 호구들일 뿐, 손톱만치의 애정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1회 강연에 약 35,000달러의 수입을 챙기는데, 이는 웬만한 근로자의 1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돈이다.

미국 안에서는 집권층과 뚱보 CEO들, 잘나빠진 정치 엘리트들을 대상으로 돌을 던지면서 니들이 못사는 건 다 얘네들 때문이라고 외친다. 이에 멋도 모르고 다수의 서민새끼들이 열광을 하기 때문에 이것 참 돈이 벌리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해외에 나가면 이제 그의 목표제물은 미국인 전체가 된다. 미국인은 미치광이, 돈벌이 환장한 벌레들, 뚱뚱하고 어리석은 병크에다 뇌가 없는 바보들이라고 조롱한다.

평소에 미국에 반감이 많은 유럽 사람들은 이런 무어에게 열광하고 대리만족을 느끼며 찬사를 보낸다. 프랑스의 공산당은 물론이고 호주의 극우파 리더인 Joerg Haider 등 좌우를 막론하고 미국을 싫어하는 이들은 닥치고 무어의 반미선동에 훌떡 넘어간다. 심지어 중동의 테러리스트 그룹인 헤즈볼라는 아랍에미릿의 Front Row Entertainment와 함께 그의 영화『화씨911』을 홍보하고 다녔다고 한다.

실제 그의 책이나 영화들은 해외에서 인기가 있다. 예를 들어『Stupid White Men』이라는 책을 보자. 이 책이 독일로 가면 책 제목이『Stupid White Men : Settling the Score with America under Bush』즉, "얼빠진 백인들 : 부시 통치하의 미국에 보복하기"로 추가 둔갑된다.

이렇게 해외에서 미국 전체를 조롱거리로 만든 후 돈을 긁어모아놓고, 미국에 돌아오면 자신은 미국을 사랑한다고..부시대통령과 문제들을 얘기하고 싶다고 청승을 떨어댄다. 요약하자면 그에게 반미는 돈벌이 수단일 뿐이다.

by 無名氏 | 2010/02/10 00:22 | 인.물.평.론 | 트랙백 | 덧글(2)

마이클 무어考... 나만 아니면 된다는 환경보호론자, 복지주의자②

 

무어 본인 말로는 1989년『Roger & Me』가 성공을 거두기 전, 거의 알거지 상태였다고 한다. 뭐 사람의 인생살이가 다 그런거지만, 좀 먹고 살만하면 자신이 예전 못살았던 때는 낭만이 되는 거고, 그 낭만이 좀더 드라마틱하려면 스토리에 여기저기 살이 붙기 마련이다.

무어 역시 마찬가지로 그의 영화가 성공을 거둘수록 못살았던 때의 비참함은 더 처절해지는 듯 하다. 최초에 그는 한 리포터에게 영화가 성공을 거두기 전에는 1년에 19,000달러 이상을 벌어본 적 없다고 했다가 그 뒤 New Yorker의 인터뷰에서는 15,000달러라고 했으며, 캐나다의 한 신문사와 인터뷰할 때 그의 궁핍함은 12,000달러로 급전직하한다.

그러나 영화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빈병과 깡통을 수집해다 팔았다는 이 양반의 불우했던 시절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1988년에 그는 제너럴 모터사에 대해 쓴 책의 인세로 뉴욕의 한 출판사로부터 50,000달러를 받았다. 그는 또 Mother Jones라는 잡지사의 편집자 자리에서 해고되면서 받은 퇴직금 조로 50,000달러를 추가로 받았다. 또 이 해에 조력자인 Ralph Nader로부터 20,000달러를 또 받았다. 그런데도 입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을 하고 다닌 셈이다.

그가 Nader 밑에서 일하기 위해 1988년 워싱턴 D.C.로 이사했을 때 그는 Cleveland Park 부근에 집을 얻었는데, 건너편에 국립 동물원이 있었고, 주변에는 블루칼라 노동자 따위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의 말대로 연봉 12,000 달러면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급에 속하는 저임금인데, 이런 집으로 이사하는게 가당키나 하겠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1989년 그는『Roger & Me』의 성공을 계기로 미국 극장가에 혜상처럼 등장했고, 그때부터 돈이 남아돌아 주체를 못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회정의와 평등세상을 구현하는 순결한 노동투사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British Film Institute에서 발행한 한 기사에 따르면, 무어가 영화홍보차 BBC 방송국으로 갔을 때, Concode 차를 몰고 매우 호화스러운 곳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싸구려 호텔도 같이 잡았는데, 기자와 언론관계자들은 여기서 만나며 서민풍의 환경에서 자란 사람으로서의 외연을 잃지 않았다.

무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흑인들이 득시글대는 Flint에서 살고 있지도 않으며, 내쇼널 지오그래픽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3대 호수 중 하나라고 꼽은 미시간 주의 Torch Lake 부근에 집을 가지고 있다. 무어가 그곳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간 것은 아니다.

『Stupid White Men』이라는 저서에서 그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열 시스템, 식수 정화장치, 재활용 시스템, 수냉식 장치를 갖춘 친환경적인 목장을 가지고 있다고 조롱한 바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보다 더 부유할 것으로 추정되는 무어 그 자신이야말로 이러한 친환경적 시스템 그 어느것도 구비하지 않고 있다.

그의 집은 미시간 주의 명물인 수령 70년 이상의 적송(red pine) 나무들을 쓸어내고 지어졌는데, 그 규모가 무려 10 에이커 (약 1만2천평)에 달한다. 게다가 집을 지으면서도 여러 잡음이 많았다고 한다. 무어의 집을 지은 회사는 근처의 Maple City에 소재하고 있는 Blue Chip Log Homes라는 회사인데 가족들이 경영하는 이 소규모 건축업체이다. 벼룩의 간을 빼어먹는다고 말로는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한다면서 이들에게 건축대금을 떼먹고 지급하지 않자 참다못한 이 건축회사는 그 집에 유치권을 설정하기도 했다.

무어가 개인 사유지로 소유한 281 feet의 빼어난 해안가는 그 지역에서 말이 많았다. 최근에도 무어는 자신의 해안가 사유지를 확장하려고 습지를 파괴했다가 관계당국에 의해 고발되기도 했다.

무어는 또한 뉴욕에 럭셔리한 펜트하우스를 소유하고 있는데 10년이상 거주한 곳이라 떠들고 다니더니 2003년에 갑자기 미시간주로 이사를 하게 된다. 2003년은 그가 Bowling for Combine이라는 영화로 천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둔 해이기도 하다. 뉴욕에 계속 거주한다면 그는 수익금의 7.7%라는 세금을 내야 했지만, 미시간 주는 3.9%만 내면 되었다. 무어는 이렇게 미시간주로 이사를 함으로 해서 수십만 달러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었다.

덧...이 포스팅 시리즈는 지난번 촘스키考에 이어지는 내용으로서 Peter Schweizer 著 『Do as I Say (Not as I Do)』를 번역한 내용에 약간의 조미료를 가미하였음을 밝힙니다.

by 無名氏 | 2010/02/07 22:40 | 인.물.평.론 | 트랙백 | 덧글(2)

마이클 무어考... 입진보도 진화하면 사기꾼이 된다 ①

 

마이클 무어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진중권의 주둥이와 이외수의 대가리를 합쳐놓은 크로스 오버형 입진보라고 할 수 있다. 입진보도 여러 부류가 있다. 소위 우리 생활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양산형 입진보라는 게 있고, 이들을 등쳐먹는 재미로 사는 밥그릇 진보들이 있으며, 조직화된 전위부대로서 전철연이나 노점상연합회 같은 프로페셔널 데모꾼들이 있다.

양산형 입진보는 무엇에나 알아서 쉽게 낚여주는 저글링을 의미한다. 단촐하고 저렴한 대가리와 즉흥적 반응성을 보이는 촉수 레이더, 0.00001 m/sec의 미풍에도 양력이 발생되는 하이엔드급 팔랑귀를 보유하여 마이클 무어나 신해철 같은 딴따라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삼성이 한겨레 광고를 끊으면 언론탄압인데, 조선일보 사옥에 오물을 투척하거나 코리아나 호텔 벨보이들을 두들겨 패면 정의사회의 구현이므로, 이들을 낚을 때는 분신자살 열사권유나 시체매고 행진 같은 고전적인 네크로필리아 수법보다는 마이클 무어처럼 최첨단 매스 미디어와 인터넷 따위를 "젖절"하게 활용하는 게 좋다.

마이클 무어가 스타덤에 오른 배경은 어디서 근원하는 것일까. 일단은 남 잘사는 거, 잘 되는 거에 배 아픈 인간의 심리를 콕 찝어낸 뒤 어느정도 보상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발가벗기고 때려부수고 모욕을 줌으로써 그것이 마치 사회정의의 본질인냥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마치 서민출신에 고졸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대중들이 보여준 열광처럼 근거를 알 수 없는 헛된 희망, 소박한 것에 느끼는 묘한 동질감 같은 것들이 대중을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잘알고 있다. 마이클 무어는 이들에 편승해 일약 거부(巨富)가 된 진보팔이에 불과하다.

그가 외치는 민중 민주주의들은 촘스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시의적절한 반미코드와 결합한다. 대기업 커넥션과 제약회사들의 횡포들을 고발함으로써 대다수 못사는 미국 민중들이 상위 1%의 부자들을 먹여살리는 모순을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군수업자들과 결탁하여 세계 곳곳에 전쟁과 정변을 조장하고, 총기를 휴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불안한 사회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제거되어야 마땅한 미국의 악(惡)이라고 규정한다.

성장 일변도의 산업정책은 미국 민중들이 잘사는데 이바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약탈과 환경파괴를 부추기며, 양극화와 인종주의를 조장한다고 주입한다. 그가 남긴 책이나 영화는 이처럼 한결같은 스테레오타입의 반미주의를 역설하는데 있다.

화씨 911이라는 영화에서도 미국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아랍민족의 테러리즘이 아니라 군수산업 팽창과 침략적 경제정책을 방조한 미국 정부 그 자신이라고 한다. 그의 이러한 신랄한 비평은 미국 사회의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마이클 무어 그 자신은 어떠한가?

무어가 입고 다니는 옷부터가 노동자 출신의 서민풍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연출된 흔적이 보인다. 후줄끈한 티셔츠에 낡은 청바지, 흔해빠진 야구모자 같은 것을 평범하다 못해 초라하게 입고다님으로써 대중들에게 좀더 쉽게 어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출신지와 성장배경까지도 조작을 한다. 그는 기회가 날 때마다 자신을 미시간 주의 Flint 출신이라 소개한다. 그가 최초로 히트를 친 영화 Roger & Me를 보면 지역적 배경이 미시간주 Flint 지방의 Rust Belt factory town인데, 자신이 이곳 출신이라고 얘기를 함으로써 영화의 극적인 요소가 가미될 뿐만 아니라, 못살고 흑인들이 바글대는 Flint 출신이라는 점이 관객들로 하여금 동질감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People's Weekly World 리포터가 무어를 인터뷰하면서 당신은 어떻게 노동자들의 가려운 곳을 그리 잘 아느냐 물어본 즉, 자신이 Flint에서 성장했던 배경이 작용했다고 천연덕스럽게 답변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공식 웹사이트를 자칭 "Flint Native"라고 부르는 한편, 그의 이메일조차도 mmflint@aol.com으로 치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는 Flint 출신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Flint 바로 옆에 위치한 중산층 백인들만 모여사는 Davison에 살았다. 가까운 동네라고 봉천동과 방배동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부친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억압을 받아 입에 풀칠이나 하며 근근이 연명한 사람도 아니었다. 부친은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에서 근무하면서 매일 오후마다 클럽에 나가 골프를 쳤다. 매년 4주의 유급휴가를 즐기는 등 안락한 생활을 하다가 53세에 은퇴했다.

부친은 남부럽지 않은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두대의 자가용을 굴리고, 자식 넷을 모두 학비가 더럽게 비싼 사립 카톨릭 고등학교로 보냈고, 그 중 셋은 대학까지 보냈다. 무어는 유일하게 대학을 안갔는데, 돈이 없어서 "못간 것"이 아니라 Michigan-Flint 대학에 입학한 후 주차장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때려쳐 "안간 것"일 뿐이다.

대학진학을 포기한 무어는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좀 싸돌아다니다 Michigan Voice라는 조그마한 신문사 하나를 차리게 된다. 무어는 이때 돈이 없어 쪼들렸고 엄청 고생했다며 무용담처럼 얘기하곤 하는데, 사실은 제너럴 모터스의 창업주 손자인 John Stuart Mott라는 후원자를 만나 막강한 자금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고생한 것도 아니다.

이 후원자는 집구석과 뭐가 좀 안맞아 별거 중에 있다가 무어를 만나게 되는데 무어의 급진적인 정치적 견해에 낚여서 무어가 일용할 사업자금과 생활비를 대주게 된다. Roger & Me 배급자인 John Pierson의 증언에 따르면 후원자 Mott는 무어가 뉴욕을 방문할 때마다 그의 Upper East Side 접대용 아파트를 제공하곤 했다고 한다.

<아패로도 개속>

by 無名氏 | 2010/02/07 11:58 | 인.물.평.론 | 트랙백 | 덧글(11)

공무원 철밥통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면 어떨까

 
☞ 트랙백 : 영혼 있는 관료를 위하여 -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의 글로벌 스탠다드

우리가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신분보장, 즉 직업공무원으로서의 헌법적 특혜를 유지하고, 권력기관에 종사하는 공복(公僕)으로서의 중립과 소임을 당부하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일종의 권리로서 보장됨과 동시에 의무로써 지켜야할 금도인 것이다.

글로벌 스탠드라 해서 난 또 이게 무슨 소린가 해서 보니, ILO 151호 협약에 나온 내용을 근거로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얘기하는 것 같은데.. 이 협약은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에 관한 일반론이 아니라, 단지 공무원 노조의 단결권 보장에 대한 국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공무원의 단결권은 우리나라도 법에 의해 보장)

즉, 이 규정은 단결권이 일종의 시민권리로서 제약당해서는 안되는 정치적 자유 중 하나라는 것이지, 일반 국민처럼 정치적 자유 전반을 포괄적으로 보장하라는 내용이 아닌 것이다. 이점은 같은 기구 소속인 결사의 자유 위원회(SFA)가 내린 심리결정례(Digest of Decisons, 1996)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공무원인 경우 단체행동권을 금지(prohibition) 하거나 제한(restriction)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단지, 동 위원회는 기본권이 제한되는 공무원의 범주를 지나치게 넓게 잡아 일반 국민의 권리가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일반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근거로서 논자가 제시한 ILO 자료는 글로벌 스탠다드로서 별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논자가 제시한 다른 국가 사례도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에 비교적 관대한 국가들일수록 이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처럼 공무원들이 노조 활동을 하건, 정당에 가입하건 상관은 안하는데, 근무성적 불량이나 자질 부족을 이유로 언제든지 공무원 모가지를 쳐낼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나 역시 공무원들의 정치활동에 찬성한다.

그러면 신분보장이 우리처럼 비교적 잘되고 있으면서도,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을 거의 무제한 보장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독일에서는 철밥통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신분이 보장되는 정규직 공무원이 전체의 40%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비정규직에 생산직 공무원들이다.

독일에서 정규직 공무원이 되는 것, 즉 천직공무원이라 해서 종신고용 자격을 획득하려면 공무원의 공공서비스, 신뢰성, 충성심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인격적 요소까지 모두 평가되는데, 이 관문을 통과하기가 소림사 18나한을 무찌르고 금동불상을 만나기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이 종신공무원이 되기 위해 이들은 일정 수준이상의 교육과 훈련을 이수하여 기본자격을 갖춰야하며, 수습기간을 무사히 이수해야 하고, 요구된 시험들을 통과하고 27세 이상의 나이가 되야한다.

우리가 한가지 잘 알아야 할 점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비교적 잘보장하고 있는 국가들도 이들의 활동에 대해 무제한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공무원도 국민의 일원으로서 헌법적 기본권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들의 제도적 취지는 공무원 신분에서 떠나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즉, 근무시간에 또는 그가 속한 소속 관청건물 안에서 또는 공무원임을 상징하는 제복이나 휘장 등을 착용하고, 정치적 활동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시는 해고 사유가 된다. 우리나라처럼 구청에다 돗자리 깔아놓고 시뻘건 머리띠를 둘러맨 상태로 민원인을 상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업시간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부시=FUCK이라는 동영상을 틀어주거나, 미친소 OUT 같은 정견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다가는 무기질이 풍부한 콩밥을 먹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국가들이라 할지라도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사인(私人)과 공무원의 권리의무가 똑같아야 한다면 구태여 국가공무원법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런 나이브한 사고를 가진 분들이 막상 철도공사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당하면 누구보다 열폭할 것 같다고 하면 그건 나만의 생각일까?

by 無名氏 | 2010/02/06 14:35 | 법.과.생.활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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